이란 ‘바드기르’(Badgir) 전통 바람탑 건축과 자연 냉각 시스템

이란과 중동 지역의 건축은 극한의 기후 환경에서 효율적인 주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더욱 발전해왔다.

특히, ‘바드기르’(Badgir)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바람탑(風塔) 시스템은 자연 냉각 기술의 정수로 평가를 받는다.

바드기르는 높은 탑 구조를 통해 바람을 건물 내부로 유도하고, 공기의 순환을 유도하여 실내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는 현대적인 에어컨과 같은 기계적 냉방 장치가 없던 시절에도 효과적인 온도 조절을 가능하게 했던 혁신적인 건축 기법이다. 바드기르는 주로 이란,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지에서 발견되며, 이란의 도시야즈드(Yazd)는 이러한 전통 건축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의 친환경 건축에서도 바드기르의 원리를 차용하여 에너지를 절감하는 다양한 건축 설계가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바드기르의 작동 원리는 공기 역학과 자연 대류 현상을 기반으로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방향을 향해 개방된 바드기르의 상단은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내부로 유도하며, 건물 내부의 뜨거운 공기는 자연스럽게 위로 상승하여 배출된다. 이 과정에서 실내 공기가 지속적으로 순환하며 온도가 낮아지는 효과를 얻는다. 바드기르의 내부는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채널(공기 통로)로 나뉘며, 이는 건축물의 구조와 기후 조건에 따라 다르게 설계된다. 특히,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는 바드기르와 지하 저수조(아바나, Ab Anbar)를 결합하여 냉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설계는 현대 건축의 패시브 냉각(Passive Cooling) 개념과 일맥상통하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한 건축 모델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바드기르의 형태와 구조는 지역별 기후와 건축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변형을 보이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단일방향 바드기르(One-sided Badgir)로, 특정 방향에서 부는 바람을 포착하도록 설계된다. 반면, 사방향 바드기르(Four-sided Badgir)는 여러 방향에서 바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바람이 일정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일부 바드기르는 원형 또는 팔각형으로 설계되며, 이는 공기 흐름을 최적화하고 구조적인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건축 재료 역시 기후에 맞춰 선택되는데, 주로 점토 벽돌과 석고를 사용하여 열을 차단하고 공기의 냉각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 적용된다. 이는 오늘날 친환경 건축에서 강조하는 로컬 자원 활용(Local Material Use) 개념과도 부합한다.

 

현대 건축에서는 바드기르의 원리를 응용한 다양한 설계가 등장하고 있다. 중동뿐만 아니라 유럽과 북미에서도 패시브 디자인(passive design)의 일환으로 자연 환기 시스템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의 친환경 건축 프로젝트나 유럽의 저에너지 건물(Passivhaus) 설계에서는 바드기르와 유사한 자연 환기 기법을 활용하여 에너지 절감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UAE의 친환경 도시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는 전통적인 바드기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연구와 실험은 기후 변화 대응 및 지속 가능한 건축 모델 개발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바드기르는 단순한 전통 건축 요소를 넘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형 건축 설계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